
점심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다가 회사 생활이 10년쯤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처음으로 국민연금 예상수령액과 퇴직연금 적립금을 나란히 놓고 더해봤습니다. 퇴직연금이 막연히 생각하던 금액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AI에게 물었습니다. 부업을 하거나 소비를 줄여서 매달 200만원을 더 모으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은퇴 시점에 현금성 투자자산 7~8억을 만들 수 있다고요.
실행할 수 없는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행 가능한지를 따지기 전에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7~8억이 월 얼마가 되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은퇴 준비를 검색하면 나오는 숫자는 거의 다 총액입니다.
필요한 돈은 이미 조사돼 있습니다
노후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는 조사된 숫자가 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2024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제10차 부가조사에서, 50세 이상이 생각하는 적정 노후생활비는 부부 기준 월 298만 1천원, 개인 기준 월 197만 6천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더 줄일 수 없다고 답한 최소생활비는 부부 216만 6천원, 개인 139만 2천원이었습니다. 전국 50세 이상 가구원이 있는 5,138가구, 8,39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입니다.
부부 기준 월 298만원. 이 숫자를 기억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받는 돈도 이미 집계돼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실제로 얼마씩 나가는지도 공표돼 있습니다.
2025년 7월 기준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수령액은 약 67만원입니다.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인 수급자로 좁히면 평균 112만원, 10년에서 19년 사이는 평균 약 44만원입니다.
부부가 둘 다 20년 이상 가입해서 평균만큼 받는다고 하면 합쳐서 224만원입니다.
적정생활비 298만원까지 74만원이 모자랍니다. 한쪽만 20년 이상 가입했다면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다들 총액을 모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그 연금은 65세부터 나옵니다

1969년생 이후는 만 65세부터 노령연금을 받습니다.
법정 정년은 60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언제까지 일하게 될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60세에 나오면 5년, 55세에 나오면 10년 동안 연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기간에도 생활비는 그대로 나갑니다.

부부 적정생활비 298만 1천원을 120개월에 곱하면 약 3억 5,800만원입니다. 최소생활비 216만 6천원으로 잡아도 약 2억 6,000만원입니다. 물가 상승은 넣지 않은 단순 곱셈이고 가구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크기를 가늠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목표로 삼은 총액이 7~8억이었다면, 그중 절반 가까이가 연금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갑니다.
총액 계산에는 이 대목이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몇 억을 모으느냐만 이야기하고, 그 돈을 언제부터 헐어 쓰기 시작하느냐는 빠집니다.
게다가 화면은 없는 돈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계산하고 나면 그다음에 하는 일은 대개 적립금 확인입니다. 그런데 이 화면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은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와 4주간 평균하여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퇴직급여제도 설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이직이 잦았다면 이런 구간이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안 쌓인 돈이 조회 화면에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면은 있는 것만 보여줍니다. 비어 있는 기간은 어디에도 뜨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한 햇수만큼 쌓여 있으려니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다만 계약 기간이 1년 미만이었더라도 공백 없이 반복 갱신되어 계속근로가 1년 이상 유지된 경우라면 퇴직급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짧은 근속이 섞여 있다면 본인 이력이 여기 해당하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습니다.
옮겨둔 것과 굴린 것은 다릅니다
이직할 때 퇴직금을 IRP로 옮겨두면 일시금으로 받아 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다만 옮긴 뒤에 그 돈이 어떤 상품에 들어가 있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원리금보장형에 들어간 채로 몇 년이 지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계좌가 그랬습니다.
어떤 상품이 낫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무엇을 선택해두었는지 알고 있느냐가 먼저입니다.
확인하는 데는 하루면 됩니다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통합연금포털에서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정보를 한 곳에서 조회할 수 있습니다. 89개 연금 관련 기관과 연계돼 있고, 국민연금의 수급개시연월과 예상연금액,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적립액을 볼 수 있습니다.
조회를 신청하면 정보가 모이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신청해두고 며칠 뒤에 다시 들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국민연금 예상연금액만 먼저 보려면 국민연금공단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적어볼 한 줄

숫자를 다 모을 필요는 없습니다. 네 가지면 됩니다.
회사를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나이, 국민연금이 나오기 시작하는 나이, 그때 받게 될 월 금액, 그리고 지금까지 쌓인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적립액.
이 넷을 한 줄에 적으면 소득이 없는 기간이 몇 년인지가 바로 나옵니다. 그 햇수에 예상 생활비를 곱한 금액이, 총액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빠져 있는 숫자입니다.
저는 이 계산을 하고 나서야 배우자와 같은 숫자를 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한 사람만 화면을 본 상태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은퇴 후에 매달 얼마가 필요한지를 정하는 순서를 다룹니다. 조사된 평균값이 아니라 자기 지출에서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참고한 자료
- 국민연금공단, 2024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제10차 부가조사 결과 https://www.nps.or.kr/pnsgdnc/nscvrgdata/getOHAE0002M1.do?hmpgBbsCd=BS20240145&hmpgCd=01&menuId=MN24000898&pstId=ZZ202500000000001624
- 국민연금공단, 급여지급 통계 https://www.nps.or.kr/pnsinfo/statistics/getOHAF0119M0.do
- 국가법령정보센터,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4조 https://www.law.go.kr/lsInfoP.do?lsiSeq=115301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퇴직급여 지급요건 — 계속근로기간 확인 https://easy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999&ccfNo=3&cciNo=1&cnpClsNo=2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노령연금 https://easy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2056&ccfNo=2&cciNo=1&cnpClsNo=1
-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https://www.fss.or.kr/fss/lifeplan/lifeplanIndex/index.do?menuNo=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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